캡틴 입니다.

퍼 왔습니다.

 거제도의 입장에서도 한번쯤 고민을 해보시기를 바라면서...

[지역경제 블랙홀 ‘연륙교’] 위기의 남해군

2003년 4월 경남 남해군 창선도와 사천시를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완공되자 남해군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사천과 다리로 이어지면 관광객도 많아지고, 섬생활 형편도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1시간만에 오는 철부선에 자동차를 싣고 다녀야했던 창선도 주민들에겐 연륙교는 숙원사업이었다. 8년의 공사 끝에 4개의 섬을 징검돌 삼아 이어진 서로 다른 구조와 형식의 5개의 다리로 된 연륙교가 개통되자 관광객들도 몰려들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남해군은 관광객과 물류비 절감으로 인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꿈에 부풀었다.


남해 창선도에서 바라본 ‘창선·삼천도대교’의 모습. 대교 윗쪽으로 사천시가지(옛 삼천포 지역)가 보인다. 다리는 위로부터 삼천포대교(사장교), 초양교(중로식 아치교), 늑도교(PC박스교), 창선교(중로식 아치교).

3년이 지난 현재. 아쉽게도 연륙교는 더이상 남해군 주민에게 ‘꿈의 다리’가 아니다. 농업과 어업, 상업이 전부인 남해군의 경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천의 경기만 좋아진 셈이 되고 말았다. 다리가 블랙홀처럼 남해군 전체를 사천으로 빨아들인 것이다.

#연륙교는 섬을 빨아들인 블랙홀

“읍내시장엔 창선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어요” “창선 사람만 없나? 읍내 사는 젊은이들도 안보여요. 모두 차 끌고 사천으로 나가요”

시장 경기를 묻자 상인들은 한결같이 “다리가 생긴 뒤 남해의 경제는 오히려 나빠졌다”고 말했다.

창선 주민 뿐 아니라 창선도에서 20여㎞ 떨어진 남해읍 주민까지 연륙교를 건너 사천의 할인점 등을 이용하면서 남해읍 상설시장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시장에 지붕을 씌우고 최신식 주차시설까지 마련했지만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면단위의 재래시장은 노인들만의 시장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인구 5만1천여명인 남해군은 다리가 개통된 2003년과 이듬해에 자가용 승용차가 900대 이상이나 늘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5%를 넘는 것을 감안할 때 젊은 층의 상당수가 자동차를 구입한 것이다.

“관광객이 많으면 뭐해요. 목 좋은 곳은 다리 짓기도 전에 서울 부산 사람들이 다 차지했는데... 물가만 올랐어요”

다리 건설 계획이 나온 90년대초부터 외지인들이 해안가 일대를 매입,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어 관광객 증가로 인한 남해군민의 수입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닷가는 주로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사천보다 물가가 높아졌다. 바다를 눈 앞에 두고도 생선회를 먹기 위해 사천으로 나가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관광객은 오히려 감소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2~3일씩 묵고 가면서 택시를 이용했는데 요즈음은 관광객 모두가 차를 몰고 오니까...”

남해읍의 택시기사 김모씨(53)는 “8월 휴가철에 외지 손님을 딱 한번 태웠다”며 “다리가 생긴 뒤로 승객도 줄고 관광객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해군 통계연보를 보면 연륙교를 개통한 2003년 관광객은 2백85만명(연인원 기준)으로 전년도에 비해 30만명이 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에는 50만명이 감소하고 말았다. 해수욕장 이용객도 1999~2002년 98만~1백10만명이었다가 2003년 93만명으로, 2004년에는 44만명으로 급감했다.

이에 대해 남해군 주민들은 “체류형 관광지에서 경유형 관광지로 바뀐 것”이라며 “이는 연륙교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광객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지자 군내 2차선 도로의 4차선 확장 여론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도로가 넓어지면 남해군을 경유하는 관광객만 늘어날 뿐이라는 주장이다. 또 남해읍과 연륙교 사이의 이동면, 삼동면, 창선면 일대 해안도로를 따라 숙박 업소가 1~2㎞ 간격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자 남해군이 드라이브 코스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택건설업만 활기

남해군은 연륙교의 개통으로 물류비와 통행시간 절감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 생산력 확대, 세수증가, 고용창출, 토지이용 촉진 등의 간접적 효과도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 연륙교 개통을 전후해 관광지 개발 붐이 일면서 모텔, 식당 등이 늘었고 남해군 건설업체는 20여개가 늘었다. 종사자수도 200여명이 늘었다.

반면 제조업 종사자는 180명이 감소했다. 숙박 업소 및 음식점은 숫자는 늘었지만 종사자수는 큰 변화가 없다. 생각만큼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이 외의 다른 산업은 모두 침체돼 전체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말았다. 결국 해마다 1,000~1,500명이 외지로 빠져 나갔다. 일자리를 찾아 남해를 떠난 것이다.


발전 침체 ‘양날의 칼’

흔히 고속도로나 다리를 건설하면 운송비 절감, 주행시간 단축, 교통사고 감소 등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공업지대가 분산되고, 도시인구도 분산된다고 한다. 새롭게 연결된 지역은 경제가 좋아지고, 소득증가와 지가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같은 주장에는 ‘나라의 부강은 산업개발에 있고 산업개발은 치도를 선행해야 한다’는 구한말 김옥균의 ‘치도약론(治道略論)’이 빠지지 않는다. 토목 관련 기관과 업계, 그리고 예산을 많이 확보하려는 자치단체장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다. 그러나 지역 경제의 특성에 따라 도로와 다리는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낙후지역의 유통업은 이야기가 완전 달라진다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동명대 경영학부 김도근 교수는 “도매업, 시장, 슈퍼마켓, 할인점 등 유통업은 도시와 경쟁하는 업종으로 도로와 다리가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등 교통사정이 좋아지면서 농·어촌 뿐 아니라 중소도시, 지방 대도시의 유통업은 이미 위기에 처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실제 ‘창선·삼천포대교’ 건설 이후 남해군의 유통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위축되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은 사천과 구 삼천포 지역도 최근 서울의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을 추진하자 “지역 경제가 몰락할 것”이라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대진고속도로 개통이 빚어낸 결과다.

유통업 뿐만이 아니다.

남해군은 연륙교 개통으로 오히려 관광객만 줄었다. 제조업 유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고용도 늘지 않았다.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관광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육지와 연결됐기 때문이다. 산업 기반이 탄탄한 거제도의 경우 조선업이 활기를 띠자 전국 각지에서 상인과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역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개통한 연륙교는 지역 경제의 독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2006.09.04/권기정기자 kw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