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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의 주맥이 굽이쳐 장승포항을 감싸고 능포 앞 바다에서 우뚝 서 멈춘 곳 돌출부에 괴이하게 생긴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고 천년노송이 우거져 있어 태고의 신비를 자아내고 있다.

이 지대를 가리켜 양지암이라 한다.

장승포에서 부산 가는 뱃길을 따라 벗어나다 보면 군함같이 생긴 바위가 머리를 쑥 내밀고 그 뒤에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상사 바위라 한다.

샛바람이 불면 거센 파도가 바위를 휩싸고 표효하는 소리는 간장을 서늘하게 한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듯한 성난 파도는 잠깐 이고 훈풍이 불때면 물보라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듯이 찰삭거리는 모양은 해상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 조선 중기 이상서 라는 한양 양반이 삭탈관직되어 이 곳으로 유배를 왔다.

무남독녀 외동딸 국화를 데리고 몸종 삼돌이와 함께 세 식구가 능포 어구에 초막을 짓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상서 딸 국화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일곱 살에 천자문을 떼고 열 다섯 살에 사서를 다 배웠다.

성숙한 국화의 모습은 보름달같이 아름답고 거기다가 경서까지 통달하여 재색을 겸비한 규수가 되었다.

국화를 한번 본 인근 마을 청년들은 남몰래 국화를 사랑하였으나 세도 높은 한양 양반의 딸이니 사랑을 호소하거나 규방 처녀를 만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인데 감히 사랑을 하소연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마음만 애태우고 상사일몽에 젖은 동리 총각들은 애모와 연정의 대상이 되어 짝사랑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상서의 몸종으로 삼돌이는 신분이 종의 몸으로 국화를 은연중에 사모하게 되었다.

그 당시 종의 몸으로 양반집 처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상전과 몸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로 삼돌이의 목숨도 상전의 손에 달려 있었다.

고적하고 외로운 섬에서 날이 새면 만나는 사람은 이상서와 국화 그리고 몸종 삼돌이었다.

이상서는 귀양살이만 풀리길 기다리면서 독서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국화는 아버지인 이상서의 뒷바라지에 효성을 다하였다.

국화와 삼돌이는 이성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국화는 장부의 품속이 그리워졌고 삼돌이는 국화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화는 오직 이상서의 귀양살이가 풀려나서 어릴 때 정혼한 김판서의 아들과 결혼할 수 있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삼돌이는 국화와의 사랑은 이루지 못할 사랑인줄 알면서도 국화를 밤낮으로 그리워했다.

마음을 끊으려고 하면 그럴수록 더한 연민의 정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삼돌이는 종으로 태어난 팔자타령을 하다가 이루지 못 할 사랑일 바에야 차라리 저 세상으로 가서 이루어야겠다며 삼돌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국화만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하여 자리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삼돌이가 가엾게 생각된 국화가 마지막 죽 한 그릇을 끓여다 삼돌이에게 주었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국화를 본 삼돌이는 반가워 눈물까지 흘리면서 국화가 끓여준 죽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상사의 한을 안고 죽고 말았다.

삼돌이가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밤 국화는 몸이 이상해서 잠을 깨고 보니 이상한 실뱀 한 마리가 국화의 몸을 감고 있었다.

질겁을 할 만치 깜짝 놀란 국화와 이상서가 뱀을 떼 놓으려고 해고 뱀은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소문은 온 마을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희귀한 광경을 큰 구경거리인 듯 보려고 모여들었다.

"삼돌이의 죽은 영혼이 상사뱀이 되었네. 우찌하몬 좋노."
동리 아낙네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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